요한 멜히오르 몰터는 18세기 독일 바로크 음악의 중견 작곡가로, 다수의 기악곡과 협주곡, 성악곡을 작곡하며 자신만의 독창적 어법을 개척했다. 그는 트럼펫 협주곡과 오보에 협주곡에서 눈에 띄는 작곡 기술을 보여주었으며, 전통과 실험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구사했다. 바흐, 헨델 등 거장들의 그림자에 가려졌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은 고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재발견되며 그 가치가 점차 인정받고 있다.
바흐의 시대에 묻힌 숨은 거장, 몰터
18세기 유럽, 특히 독일 지역은 바로크 음악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이 시대에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 등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작곡가들이 활동하며 유럽 음악사를 새롭게 써내려갔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수많은 작곡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적 실험을 시도하며 시대의 음악적 다양성을 이끌었다. 요한 멜히오르 몰터(Johann Melchior Molter)도 그러한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 1696년 튀링겐의 데르네스에서 태어난 몰터는 평범한 출신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그는 아이제나흐(Eisenach)에서 학교를 다니며 음악 수업을 받고, 이후 음악가로서의 진로를 결정한다. 바흐가 한때 재직했던 도시이자 음악적 중심지였던 이곳은 몰터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는 고전적인 독일 바로크 스타일에 이탈리아적인 세련미를 더한 작풍을 발전시켰다. 몰터는 1722년 바덴 공국의 궁정악장으로 임명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궁정에서 활동하며 왕족과 귀족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작품은 궁정 생활에 적합한 세련되고 장식적인 양식과 함께, 당대 유럽의 최신 음악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트렌드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언어를 유지하는 균형 감각을 지닌 작곡가였다.
협주곡의 대가로서의 몰터
몰터의 가장 큰 음악적 성취는 무엇보다도 협주곡 장르에서 나타난다. 그는 생애 동안 약 170여 곡의 협주곡을 작곡했으며, 특히 트럼펫, 오보에, 클라리넷,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위한 협주곡이 눈에 띈다. 이 중에는 **가장 이른 시기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포함되어 있어, 악기 역사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몰터의 **트럼펫 협주곡**은 지금도 종종 연주되며, 화려한 고음과 장식적인 패시지로 유명하다. 이 곡은 고전 시대의 형식이 완성되기 전, 바로크 음악이 보여줄 수 있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고음악 연주단체들이 그의 작품을 자주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의 영향 아래 협주곡의 구조를 명확히 하고, 리토르넬로 형식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몰터의 협주곡들은 일반적으로 세 악장으로 구성되며, 빠름–느림–빠름의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을 따른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형식적 모방을 넘어, 각 악기의 특성과 기량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음악을 구성하였다. 몰터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징은 **밝고 명쾌한 화성감각**이다. 그의 음악은 바흐의 복잡한 대위법이나 헨델의 극적인 웅장함과는 결을 달리하지만, 대신 궁정 생활에 어울리는 세련된 장식과 명료한 구조로 청중에게 친숙함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궁정 음악의 장인’이라 불릴 만하다. 몰터는 교회음악도 다수 작곡하였다. 그의 **칸타타, 미사, 성가곡**들은 바로크 후기의 경건한 음악적 언어를 담고 있으며, 종교적인 깊이보다는 감성적이고 평온한 분위기를 선호했다. 이는 루터교적 전통이 지배하던 독일에서, 궁정 교회의 예배 형식에 맞춘 음악 양식이라 볼 수 있다.
잊혀졌던 작곡가, 재발견의 길을 걷다
요한 멜히오르 몰터는 그의 생전에는 궁정음악가로서 안정적인 삶을 누렸지만, 사후에는 점차 음악사에서 잊혀졌다. 이는 바흐, 헨델과 같은 거장들의 거대한 존재감에 가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의 음악이 특정한 철학적 메시지보다는 실용적 용도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고음악 운동의 확산과 함께, 몰터의 작품도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협주곡은 고음악 전문 연주자들에 의해 복원되고, 음반으로 제작되면서 대중의 귀에 다시 닿게 되었다. 특히 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클라리넷 레퍼토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음악대학의 실기 시험에서도 종종 연주된다. 몰터는 전위적인 작곡가도, 시대를 뒤흔든 혁신가도 아니었지만, 바로크 후기 음악의 다채로움과 생기를 간직한 인물이다. 그는 대중과 가까운 음악을 작곡하며 실용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작곡가였고, 그로 인해 오히려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몰터의 음악은 과시적이지 않고, 고요하고, 때로는 목가적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음악이다. 화려한 수사보다 따뜻한 감성을 추구하는 그의 작품은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충분한 공감과 위안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요한 멜히오르 몰터를 통해 음악사에서 흔히 간과되는 ‘중간의 인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거장의 그늘 아래서도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쌓아 올린 이들 덕분에 우리는 그 시대 음악의 진짜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몰터는 잊힌 작곡가가 아니다. 그는 단지, 다시 발견되어야 할 가치 있는 작곡가일 뿐이다.